3-‘아버지’라는 이름을 그리워하며,...(1)

인생1./ Naked Life1. 2007/07/15 07:35





3. ‘아버지’라는 이름을 그리워하며,...(1)



1


야생동물의 세계에서는 집단내의 서열에 따라서 각 개체의 행동반경이 정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집단 내의 서열의식은 동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도 작게는 가정 속에서도, 형제간에도,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국가 간에도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한다.


이 고유의 ‘자리 매김’이 작게는 가정, 직장, 사회적 규범이나 질서라는 틀 속에서, 크게는 국가 질서와 국제 질서를 유지시켜주고 있음을 깊이 생각 할 필요가 있다.

내 경우에는 17살 가을 이후,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인 가정 내에서 이 ‘자리 매김’을 할 자리가 없어졌다.


한 예로 80년 6월에 큰손자의 첫 돌과 내 생일이 12일 간격으로 있었는데, 먼저 큰손자의 돌잔치 때는 엄청난 떡과 음식, 술, 고기가 그 많은 사람들이 먹고도 남은 고기가 상해서 버려야 했다.

그리고 12일 뒤에 내 생일이 있었는데 2년을 죽어가던 자식이 살아난 후에 첫 번째로 맞았던 내 생일에는 쇠고기 반 근을 넣고 끓인 미역국이 내 부모님이 내 생일을 위해서 준비한 전부였다. 한 근도 아닌 반근이 내가 받을 몫이었다.


25년이(지금은 30년) 지난 지금에 와서 쇠고기 한 근과 반근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1977년 11월 이후에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의 이런 생각들과 행동들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의 다른 자식들과 나와의 관계를 말하기 위해서 택한 전제일 뿐이다.  


이런 아버지의 태도 속에는 아버지 앞에서 쥐약 쳐 먹고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서 누운 체로 누워만 있는 막내자식의 흉한 몰골을 쳐다만 봐야 하는 ‘기막힌 부모의 입장’과 막내자식에 대한 소문이 인근 동네까지 난 덕에 ‘죄인 아닌 죄인’ 노릇을 하게 한 자식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 아버지 평생에 따라 다녔고, 평생 나를 이 감정 속에서 대했었다.


1979년 8월 이후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회복되어 다른 자식이나 다른 집의 자식들처럼 정상적으로 살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가도, 나이가 30, 40살이 되어도 제 몸 하나 가누는 것도 힘들어하는 자식 놈이 불쌍하기도 한 반면, 제 인생 망치고, 부모 얼굴에도 똥칠하게 만들었던, 그러면서도 사람 구실도 변변하게 못 하는 막내 자식 놈이 너무 얄미운 존재로 보일 때도 많았을 것이다.







2


“미움/애정, 분노/ 연민”이라는 상반된 감정으로 아버지는 당신 살아생전에 나를 대했다.


“애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관계가 나와 아버지 사이였다. 내가 79년 8월 이후 내 나이의 젊은이들처럼 정상적으로 살 수 있었다면 아버지도 막내 자식 놈의 지난 과거를 용서 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7살 때의 음독자살은 나와 아버지에게는 과거에 속한 사건이 아니고, 매번 눈으로 확인되는 현재이고, 미래까지를 이어주는 지독한 끈이었다.

더 정확하게 묘사한다면 내 정신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몸이 과거의 사건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이런 자식을 아버지는 당신 평생에 걸쳐서 ‘미움과 동정’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나를 대했다. 내 몸이 아플수록, 망가질수록, 힘들어할수록, 아버지의 분노와 미움도 같이 커졌고, 덕분에 나는 내 핏줄사이에서 ‘내 자리 매김’을 하려고 해도, 그 자리 매김을 할 틈새가 없어서 내 스스로가 가족이라는 집단을 겉돌면서 살아왔다.


86년 대학을 졸업한 직후부터 아버지와의 감정적인 대립과 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 됐다.

진짜 돈 없으면 못 견디는 몸이지만 98년 봄의 유산 분배 때에도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개념에서 그 언저리를 맴돌았던 아들로 낙착됐다. 4권에 실릴 예정인 ‘나는 어떻하라고’ (유산문제)의 근본적인 배경도 아버지와 나와의 이런 관계가 깊이 작용한 것이다.


아버지 평생에 나를 용서하지 못했고, 나는 이런 아버지가 야속해서 대들고,... 나중에는 부모자식 간에 얼굴 마주하는 것조차도 서로가 싫어하며, 오랜 세월을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상처입고, 미워하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버지는 내가, 나는 아버지가 애처로워 가슴 한 구석이 늘 서늘했다.


핏줄이 아닌 남들은 적당히 동정하고 연민 어린 시선이나 말투로 위로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뒤에서 흉보고 손가락질 몇 번하면 그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내 핏줄, 내 부모는 다르다. 아무리 자기 얼굴에 똥칠을 하게 만들고, 가슴에 못을 박고, 분노하게 만든 자식이라도, 내 자식이고 내 형제이다. 남들은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부모는 돌아서도 당신의 가슴에 자식의 자리는 남아있게 마련이다.


아버지 가슴속에 남겨두었던 막내자식에 대한 자리를 메워주지 못한 데에서 오는 실망감이 결국은 ‘애정과 연민’이라는 말보다는 ‘애증’의 또 다른 속성인 ‘미움과 분노‘라는 감정으로 표출되곤 했었다.

내가 아버지 살아생전에 아버지 가슴속에 있는 막내자식에 대한 빈자리를 메워주었던 사건은 82년 성대 조경학과 입학이고, 다른 한번은 2000년 1월1일의 행해졌던 결혼식까지 딱 2번 있었는데, 그나마 결혼생활은  2달 만에 끝을 내야만 했다.


아버지는 20001년 1월 달에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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