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칼보다도 더 무서운 무기....
인생1./ Naked Life1. 2007/12/31 11:41
6. 스트레스와 홧병 1.
- 스트레스가 총. 칼보다도 더 무서운 살인무기가 된다.
내 인생에 있어서 2번째로 힘들었던 2001년에서 2004년, 특히 2001년 여름은 신인돈목사와의 트러블과 최영철의 삼성카드 보증인으로서 최영철의 삼성카드 채무 빚 문제로 화병에 시달리는 것이 화근이 되어 온 몸이 붓고, 심한 냄새가 나는 오줌을 누던 때였다.
그때까지는 맘 좋은 후배로 생각하면서 10년을 가깝게 지내왔던 진용석까지도 그 기막힌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아니면 내 카드를 도깨비 방망이나 요술 방망이 정도로 여겼는지 모르지만 자기에게 돈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와서 낮이고, 밤이고,1주일이고,2주일이고,... 심지어는 1달이고 2달이고 끈질기게 찾아오면서 “...돈 좀 꾸어 달라”면서 무조건 떼를 쓰곤 했다.
2001년 10월과 11월,12월에는 내가 사는 아파트로, 2002년 2월과 3월에는 교회로 찾아왔다. 욕도 하고, 야단도 치고, 큰소리도 쳐 보았지만 그 앞에서는 헛수고였다.
부탁을 거절하면 해 줄 때 까지 떼를 쓰는 통에 욕하고, 야단치고, 큰소리치는 바람에, 가뜩이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만도 지겨운 마당에, 주위 사람들한테 나를 완전히 이상한 놈으로 각인시키는데 한 몫 거둔 인물(?)이 진용석이다. 결국은 그에게 2001-2002년에 해준 돈을 2007년 2월까지 카드 돌려 막기로 버티고 버텼는데....
2007년 2월 현재, 진용석이 나한테 가져올 카드 빚이 원금과 이자 합치면 1800만원정도이거나 그 액수를 웃도는 돈이 될 것이다.

2001년 늦가을에는 2000년부터 시작된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서 몸이 엄청나게 부은 상태로 힘들게 살아야만 했는데, 그 때도 교회로 찾아와서 내 카드를 이용해서 돈 좀 쓰자고 억지를 부렸다.
그 날은 부어서 힘든 몸으로 교회벽면에 글씨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나를 도와서 글자를 붙이거나 아니면 내가 글씨를 붙이기 위해서 올라간 의자라도 붙잡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의자조차도 붙들어주지 않고 교회장의자에 앉아서 “돈 꾸어 달라”는 소리만 되풀이 하면서 억지를 부리는 그에게 짜증을 내고, 큰 소리로 욕을 하다가 나중에는 양발을 벗어서 퉁퉁 부은 발을 그의 눈앞으로 보여주었다.
퉁퉁 부은 발까지도 보여주었는데도 내 몸이 심하게 부은 것은 그에게는 안중에도 없고 여전히 돈만 빌려달라고 떼를 썼다. 10살짜리 초등학생이라도 그날의 그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눈과 귀는 없고, 입만 있는 희한한 인형과 말을 하는 꼴이다.
그 날은 2시간씩이나 억지를 부려도 내가 응해주지 않자 교회를 나가면서 내던지는 말이 “남들이 형을 보고 싸이코래!”- 이 정도면 완전히‘예술수준’일 것이다. 나중에 이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자, “다 형을 생각하고, 형 교회를 생각해서 해 주는 소리”란다.
나를 2번만 생각해 주었다가는 사람을 ‘생 송장’으로 만들 놈들이다.
그리고 ‘그 남들’이란 인물은 보험설계사 하는 자기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돈 빌려 달라고 떼를 쓰는 그에게 ‘잘난 네 친구들한테 가서 돈 이야기 하라’ 고 하면 자존심이나 체면을 운운하니, 나 보고 살라고 하는 것인지 빨리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고 있는 것인지 분간도 안갈 정도이다.

그동안에 최영철은 최영철대로 TV에 출연해서 (2001년11월, 지금은 없어진 ‘장밋빛 인생’) 자기만 살겠다고 거짓말이나 하고, 진용석은 진용석대로 돈 필요하면 찾아와서 돈 빌려달라고 억지를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2001년 늦가을부터는 2000만원이 넘는 ‘트라젠’ 의 보증까지도 서 달라고 2달 동안이나 억지 부리고, 돈 필요하면 찾아와서 돈 빌려달라고 떼쓰고,...그것도 자기 외삼촌과 사업을 할 것이라면서 나는 알지도 못하는 자기 외삼촌 명의로 뽑는 차에 보증서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진용석의 외삼촌- 즉 그의 어머니 형제는 9남매이다. 9남매를 제쳐두고 그의 외삼촌과는 생면부지인 나에게 보증을 서 달라고 무조건 떼를 쓰니...더구나 그 당시 그의 외삼촌은 신용불량자였다.)
차 보증은 서 줄 수가 없었다.
2달 이상을 매 달려도 끝까지 차 보증을 안 서 주자, 한신대 앞에서 생맥주를 마시다가 기껏 한다는 소리가
“형과 형 교회를 생각해서 제안하는 건데, 형이 차 보증을 서 주면 둘째 외삼촌을 형 교회에 출석시키도록 외삼촌을 설득시킬 테니까 보증 좀 서주라...” 는 기막힌 소리를 했다.
이 소리를 듣자마자
“야, 이 미친놈아 ,내가 아무리 힘들게 교회를 하고 있고 ,교인이 없어서 환장을 하더라도, 너 같은 놈들한테 이런 소리나 들어가면서 네놈들한테 교회 나와 달라는 소리는 안 한다. 아예 교회 문을 닫게 되면 닫고 말지....이 미친놈아! 입으로는 온갖 좋은 종교정신과 윤리는 다 주워 담으면서 이걸 말이라고 하냐!”
하면서 생맥주를 마시다 말고 생맥주집을 나온 적이 있었다.
만약에 그때 그의 끈질김과 인내에 굴복해서 차 보증까지 서 주었더라면, 지금쯤은 나 역시도 신용불량자로 되었거나, 더 이상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면서까지 구차하게 사는 것이 싫어서 자살이라도 할 판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진용석이 나에게 와서 돈 문제로 억지를 쓸 때마다 “이런 일은 내가 아니고 네 부모님이 할 일이고, 네 부모님이 책임 질 일이다.” 라고 수없이 짜증을 내다가 나중에는 “이 미친놈아, 너 ,나 사는 것은 보이지도 않냐? 나 지금 돈 없는 것 뻔히 알면서 계속 개소리만 할래! 너 지금 독이 올라서 몸까지 망가지고 있는 게 내 꼴이 네 눈에는 보이지도 않니, 미친놈들아” 라고 욕까지 하면 “우리 집 지금 돈 없어서,...우리 엄마도 돈 없어” 하면서 엄청 효자소리만 골라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팔자에도 없는 효자 덕에 나만 더 죽을 맛으로 살아야 하니.... 내가 자기 친 어머니나 되는 것처럼 막무가내로 떼를 쓴 곤 했다.
내 쪽에서도 수 없이 짜증은 내봤지만, 짜증 그 자체로 끝난 덕에 진용석한테만 건너 올 돈만해도 1800만원 정도의 거금이 되었으니...


진용석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체면이나 자존심을 운운하면서 유독이 나에게만 별별 희한한 소리까지 해 가면서 억지를 부렸었던 행동 뒤에는, 내 평생을 따라다니는 나만의 특수하면서도 희한한 몸 사정이나 지나치게 화려한 병력을 지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독하게 마음을 먹어도 일상중의 일부분은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더구나 운전도 못하고 그 때까지는 당뇨병환자의 끝을 생각해서 완전 ‘컴맹’으로 살았었다.( 중증의 당뇨병환자들이 말년에 시력을 잃거나 발을 절단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책을 쓰기 시작한 2002년 여름까지도 컴퓨터에 파일을 입력하거나 입력된 파일을 출력하는 작업도 못 했었다. E-mail을 보내는 것도 2004년 5월에서야 배웠다.)
내 형편이 이렇다보니 그에게 사소한 부탁을 할 입장까지 겹쳐져야 했는데-그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완강히 부인했지만-몇 번은 나에게 드러내 놓고 생색을 낸 적이 있었다.
그들과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내가 자기들을 도와 준 것들은 모른체하고 자기들이 나를 도와주는 것만을 ‘무기로 삼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곤 했다. 내 살아가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필요이상으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안고 가는 “인생살이”이다.

지금도 내가 힘들게 쓴 <아직도 살고 싶다> 와 <구원자, 숨어 게신 하나님이시여>를 신문광고로 내 보낼 돈이 있거나, 내 옆에서 나를 성의껏 도와줄 단 한명만 있어도, 인슐린주사를 30년째 맞으면서 살고 있는 중증의 당뇨병(?)환자인 내 입장을 고려해서, 또 내 눈을 생각해서라도-2007년 한 해 동안에 왼쪽 눈은 망막을 건드리는 수술을 2번이나 했다- 컴퓨터작업은 중단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최후의 돌파구로 생각하고 발버둥을 치면서 마지막으로 뛰어든 것이 2004년 여름부터 시작한 인터넷세계이다.
<아직도 살고 싶다> 의 내용에서 당뇨병환자라면 뒷날을 생각해서 운전이나 컴퓨터, TV시청,... 따위는 ‘피 할 수만 있으면 피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30년을 당뇨병환자로 살아오면서 운전이나 컴퓨터를 못해서 내 인생이 더 힘들고 ,더 지겹게 꼬였는데도 다른 당뇨병환자, 그중에서도 소아당뇨병환자들에게 한 “...무조건 컴퓨터를 하지 말라” 는 나의 말이 얼마나 심각한 말인지를 소아당뇨병 부모들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특히 소아당뇨병을 앓는 어린 당뇨병환자라면 20년,30년,...뒷날을 생각해서 무조건 컴퓨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써 났다.
막말로 소아당뇨병환자들이 ‘컴맹’ 이 되어서 나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죽는 날까지는 “사물을 보고, 식별할 수 있는 시력까지는 간직한 상태에서 죽으라.”는 기막힌 (?) 염려이며, 충고이다.
그런대도 나 자신은 뒤늦게 인터넷 세계에 뛰어 들고 있는 중이다.
이 말은 현재의 내 입장이 이 정도로 힘들고 ,다른 돌파구가 없음을 뜻한다.
2000년 1월 이후에 진용석은 자기가 돈 급하면 내 카드 쓰자는 소리나 하고, 최영철은 나한테만 밀어 놓으면 자기 카드 빚이 저절로 해결 되는 줄 알고, 2000년 5월 삼성카드 카드 빚1390만원을 떠넘긴 것만도 모자라서 2003년 6월에 그의 부인이 임신해 배부른 몸으로 사정사정하면서 하는 부탁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들어주었다가 2003년 가을에 또 카드 현금 서비스로 400만원 만들어 보내준 것도 당하고,...지금 같으면 임신 8개월이 아니라 출산한지 8일 밖에 안 되는 핏덩어리를 안고 와서 사정해도 외면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 밖에 다른 목사 1, 2명도...자기들 때문에 내 인생이 꼬꾸라질 지경으로 꼬였는데도 “...미안 하다”는 말 한마디 안하면서 자기들만 ‘점잖고 우아한’ 목사인 줄 착각하고,..

나 진짜 모르겠다.
내 사정을 아는 그들이 ‘나하고 가깝고, 내가 편해서’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진짜 ‘마음 좋은 허수아비’쯤 으로 보이는 것이지 분간도 못하겠다.
2000년 이후로는 내가 그렇게까지 힘들게 버티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자기들이 필요한 할 말만 했다.
자기들한테 짜증내는 나는 희한한 성격이고, 내 인생 자체를 뒤엉키게 만드는 자기들은 인격이 다듬어진 사람들이라는 말까지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한술 더 떠서 큰소리치고 “지랄 발광하는 나는 인격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고, 자기는 인격적으로 다듬어져서 점잖게 애기 한다” 는 ‘진짜 개소리’같은 말까지 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이 지경으로 주체 못 할 스트레스로 인해서 몸까지 망가지면서 살았다. 당뇨병을 오래 앓을수록 말초신경이나 미세한 혈관들이 망가지는 현상은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망가지는 필연적인 현상보다는 지난 몇 년 동안은 ‘이웃이라고 믿어 왔었던 사람들’에게 받은 인간적인 상처와 그 상처들로 인해서 생긴 스트레스의 영향이 더 컸다.
2003년 12월에 실시한 건강진단에서 ‘신장에 이상이 왔다’ 고 통보를 받았다. 만약에 지난 몇 년 동안에 받은 스트레스로 신장에 더 큰 이상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서 짊어져야 할 짐으로 다가 왔다.
스트레스로 인해서 망가지는 부위는 비단 신장뿐만이 아니다.
심장, 눈, 신장,...혈당, 혈압까지 조절이 잘 안될 정도로 온 몸 전체가 심하게 망가지게 되어 있다.
또 이 사실을 최영철이나 진용석 그리고 나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수 없이 알려 주었어도 결국에는 최영철이나 진용석이 자기들 때문에 독이 바짝 올라있는 나한테 마지막까지도 “신용불량에 걸리더라도 같이 걸리고, 죽더라도 같이 죽자” 아니면“자기들이 살 테니까 나보고 죽으라.“ 는 양심도, 체면도 없는 소리까지 하면서 나를 물고 늘어 질 때도 혼자서 분통만 터트리며 버텨 왔다.
나뿐만이 아니고 흔히 ‘성인병’ 이라고 불리는 ‘진행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들에게 장시간의 스트레스는 환자들의 몸을 형편없이 악화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기회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장기간 투병중인 환자에게 있어서 심한 “스트레스는 총, 칼, 독약 더 무서운 살인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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