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06/10/18 내가 살아가는 목적....'죽기 전에’ 작정하고 꼴값 좀(!) 떨어보려고....
  2. 2006/09/21 28.....너무 뒤늦은 시간이지만....이제야....
  3. 2006/09/21 27. - 소태 같이 쓰디 쓴 책
  4. 2006/09/21 26....RH-787 음독 자들의 필수적인 삶의 조건....!
  5. 2006/09/20 25....환자의 자존심을 키워주라!
  6. 2006/09/20 24. 환자들에게 유용한 마사지 이론들....
  7. 2006/09/19 23...썸머 타임-Summer Time
  8. 2006/09/19 22. - 천의 얼굴, 천의 몸뚱이
  9. 2006/09/19 21....단장의 미아리 고개.... 애간장이 녹다!
  10. 2006/09/15 20. 밤이면 밤마다....똥 싼 놈 주제에 ...
  11. 2006/09/15 19. ...겨드랑이가 가렵기 시작했다....
  12. 2006/09/15 18. - 황당 엽기 발랄....그리고 보편성과 고정관념
  13. 2006/09/15 17. - 과제물 - 산다는 것?
  14. 2006/09/15 16. - 투쟁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
  15. 2006/09/15 15. - 미친....미친놈! - ‘crazy....crazy guy?’
  16. 2006/09/14 14. - 늙고, 병들고, 가난하고....사망 0순위
  17. 2006/09/14 13. - 심장에는 열이 완전히 독약....
  18. 2006/09/14 12. 부작용과 특이체질-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들....
  19. 2006/09/14 11.....딱 꼬집어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20. 2006/09/11 9....살아 날 것에 희망을 두지 말라...
  21. 2006/09/11 8. - 인간의 몸은 ‘사마귀’와 닮은 꼴?...
  22. 2006/09/07 7. ‘자위행위’-최고의 건강지킴이?....
  23. 2006/09/07 6.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다??
  24. 2006/09/07 5.‘성기 발랄한 나이’의 ‘영원한 내 장난감(?)’을 기억하며...
  25. 2006/09/07 4.....끔찍할 정도의 멍에
  26. 2006/09/07 3. ‘투쟁’ 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 삶의 연속
  27. 2006/09/07 2.시간 너머의 끔찍한 시절...의 그 시절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전부(?)
  28. 2006/09/07 1. 느낌이 있는 삶! -1977년 가을,
  29. 2006/08/28 46살의 이미지- Out of 46-Year-Old Image.
  30. 2006/08/27 원두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페니스강화 훈련?...!

내가 살아가는 목적....'죽기 전에’ 작정하고 꼴값 좀(!) 떨어보려고....

인생2./ Naked Life2. 2006/10/18 16:57



내가 살아가는 이유(목적)?!....



답변1....놀아도-외국 애들을 상대로-제대로 놀아보려고...놀 줄 아는 놈!!


답변2...,‘죽기 전에’ 크게 한번 꼴값을(!) 떨어 보려고.... 아예 작정하고 꼴값을(?)떨고 있는 중입니다(ing)....나만의 독특한 내 삶의 방식들을 어디까지 까발리게 될지는 몰라도, 지겹도록 희한한 내 삶을 ‘죽기 전에’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지랄발광을 떨고는 있지만, 한마디로 압축하면 “...계란으로 바위깨기”...그렇더라도 ??



** .....밑에 있는 글은 올해보다(2006년에 레이저 수술을 3번씩이나 한 눈임.) 눈 사정이 조금 더 나았던 작년 2005년 여름 활발하게 블로그활동을 하던 때에 블로그사이트 미디어 몹에서 보내온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작성한 초고의 내용들을  2006년 군장대 ‘사회복지계열’에 등록. 2학기에  ‘사회복지행정론’의 과제물2.)

내가 살아가는 이유(목적)?!...’ 에 대한 답변으로 다시 축소/편집해서  제출한 적이 있는  내용임.







1.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름: 염상명

닉네임: 울부짖는 자유인 

나이: 45 (1960년생) - 성별: 남 - 신체조건: 179cm,...

직업: 목사 / 작가 / 출판인

신체적 특징: 인슐린을 주사를 28년째 맞고 사는 중증의 당뇨병환자.


당뇨병의 가장 큰 특징은 진행형(ing)이라는 점이다.

인슐린 주사를 10년 맞을 때와 몸이 다르고, 15년 맞을 때와 다르고, 20년 맞을 때가 다르다. 20년을 넘어서는 1년마다 달라지고 있다. 심지어는 몇 달 만에도 자신의 몸이 바뀌는 것을 감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병에 시달리고 있는 다른 환자들이나 장애우들,...그 밖에도 우리사회에서 out-side로 밀려난 위치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 ‘죽지 않고 살아 날 수 있는 방법’ 들을 터득해서 “끝까지 사람답게 살다가 죽으라고!...” 책을 쓰고,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내 방식대로 알리고 있는 중이다.



2. 아이디 '울부짖는 자유인'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1977년11월, 17살에 RH-787이라는 고유한 이름의 쥐약을 먹은 뒤에 처절히 죽어가다 다시 살아남. 그 과정에서 후유증으로 인슐린주사를 맞아야만 하는 I형 당뇨병을 지금까지 앓아왔다.


77년 11월 이후부터는 햇볕, 더위, 열, 스팀, 히터, 난로,... 따위의 모든 열 종류와 더위에 못 견디는 특이한 몸 조건 위에다 시간이 흘러 갈수록  시신경까지도 각종 빛들에도 심한 거부현상을 보이고.... 또  RH-787을 음독한지 28년이 지난 지금은 RH-787의 독성이 가져 온 또 다른 후유증으로 ‘파킨슨씨병’ 증세까지도 어느 정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파킨슨씨병’에 대해서는 종합병원에서 확실한 진단을 받질 않았다.


‘내 인생살이’란 것이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지난 5년 동안 ‘이웃이라 믿어 왔었던 사람들’몇 사람들한테  지독하게 상처를 입고, 그 덕분에 덤으로 돈까지도 심하게 꼬인 인생살이를 하다보니 ‘죽-기-전-에-울-부-짖-어-가-면-서-까-지’ 희한하고도 독특한 내 삶을 토해내고 싶어서...내 스스로가 ‘울부짖는 자유인의 삶을 살아간다.’고 위로하면서 살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2003년 11월에 설립한 출판사, 직원이라곤 나 혼자뿐인 도서출판 ‘울부짖는 자유인’의 상호명이기도 하다.







3. 미디어몹에 블로그를 열기전의 인터넷이나 통신 활동은 어떠했을까요?


2004년4월말에 ‘네이버의 지식in 오픈백과-당뇨병‘에 아르바이트생의 손을 빌려서 글을 올린이후. 그해 5월초에 ’블로그‘라는 것을 찾아내서  몇 군데에 몇 개의 블로그를 개설하고  5월초부터 7월말까지 건강(당뇨병)이나 신학에 대한 글을 올리다가, 3달 가까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동안에 어렴풋이 인터넷상의 특징을 알아가면서 글 올리는 것을 중단했다. 


2004년 4월말에 ‘네이버의 지식in 오픈백과-당뇨병‘에  처음으로 글을 올릴 때는 3편의 글을 한꺼번에 올렸는데 ’네이버의 지식in' 쪽에서 2편은 보류처리 하고, 그곳에서 요구하는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 자기네들이 3편을 모아서 오픈백과에 올려줄 정도로 ‘완전 초짜 네티즌’의 글이지만,  ‘네이버의 지식in 오픈백과 카테고리 - 당뇨병‘ 에는 작년 5월과 6월에  mryoum2003 이라는 아이디로 올린 내 글들이 20위 안에 7-8개 실려 있다.


정보세계에서는 “글 내용(책 내용)으로서는 인정받더라도 그 이상의 무엇이(?) 없으면 묵힌 글이나 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작년 5월-7월에 얻은 가장 큰 수확물이었다.



4. 미디어몹에 블로그를 열게 된 계기는?


올해 5월에 내 홈페이지 www.mryoum.com  을 업 시키는 작업을 끝낸 뒤에  처음계획대로 내 홈페이지를 대한민국뿐만이 아니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광활한 인터넷시장 속에다 내 놓은 방법을 찾던 중에(광고 할 돈은 없음.) Google과 미디어 칸, 미디어 몹, 미디어 정글은 알게 된 것이다.


Google의 Blogger(blogspot)는 5월말에 알았고, 미디어 칸은 7월 초순경,7월 초순경에 ‘stoo.com'에 들렸다가 그 곳의 메인 화면을 여기저기를 클릭해 보다가 ‘블로그 정글‘를 알았고  ‘미디어 몹‘은 그 보다 조금 늦게  7월 중순에 알게 되었다. 






5. 미디어몹 외에 즐겨 찾는 사이트나 홈페이지는 어디인가요?


요즈음은 주로 외국의 블로그들...


3)번의 질문에 ‘....3달 가까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동안에 어렴풋이 인터넷상의 특징을 알아가면서 글 올리는 것을 중단했다.’라는 답변이 있다.

2004년 7월 말부터는 ‘인터넷의 특징을 알기위해서’ 야하고 지저분한 사이트를 찾아다녔다. 누구의 도움 없이 하는 작업이라 야하고 지저분한 사이트 1개를 찾아내는데 만도 하루가 걸렸다. 그 후 2주 동안은 한국의 사이트들을, 그리고 3주째부터는 주로 외국의 사이트만을 찾아다녔다.


‘야하면서도 제대로 된 사이트’를 찾는 루트를 발견하는데도 꼬박 3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2002년까지 컴퓨터를 끌줄도 모르는 사람이 ‘야하면서도 제대로 된 사이트’를 찾는다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3달 정도 경과한 다음에야 사진을 담아 올(퍼 올) 외국의 사이트들을 발견하고 10월말이나 11월 초부터 사진을 담는 작업을 했다.


내 홈페이지 업 시키는 작업이 끝난 5월 20일 경부터는 ‘인터넷의 특성과 문화의 흐름,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하여 자기를 PR 하거나(개인이나 단체 모두 포함) 자기 정보를 파는 것을 배우려고...’ 주로 외국의 블로그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Google의 Blogger(blogspot)를 안 다음부터는 홈페이지가 아니고 블로그를 가지고 자기정보를 인터넷 속에 내 보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자기를 PR 하거나 자기 정보를 파는 방법에 있어 어떤 면에서는 홈페이지보다도 블로그가 유리 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Google의 Blogger를 통해서임.)


외국의 사이트들을 서핑하면서 얻은 결과는,

첫째로, 시각적이면서  감각적인 것이  인터넷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점과


둘째로, 서양 애들의 장사수단이 진짜  뛰어나다는 점이다. 비록 야한 사이트 위주의 웹 서핑이지만 ‘이런 장사꾼들과 한국 애들이 싸워야 되니...’ 하면서 가끔은 가슴이 뜨끔할 정도의 뛰어난 장사꾼들이 모인 곳도 인터넷속이다. 


셋째로, 전 세계의 검색엔진에서는 Google42-43%, Yahoo 30%정도, AltaVista 11-13%점령하고 있고(통계숫자에서 1-2% 오차가 있을 수 있음), 블로그 시장에서는 Google의 Blogger(blogspot)가 전 세계 블로그시장을 20-30%나 점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 숫자는 통계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내가 느낀 숫자이다). 한국의 블로그 매체들도  Google의 Blogger(blogspot)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어도 참고로 할 필요는 있다. 


넷째는, 대한민국에서는 Google ,Yahoo, AltaVista의 사용량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그나마 Yahoo가 한국에 보편적으로 보급됐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야후 코리아’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사용하는 Yahoo와는  너무 다르고,  홍콩이나 싱가폴에서 (국가 경제력에 있어 아시아에서  대한민국과 비교되는 나라들)사용하는 Yahoo와 비교해도  너무 다르다. ‘야후 코리아’는 국가의 정책에(?) 따라서 폐쇄성을 너무 심하게 고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다섯째는, 아직도 대한민국 행정부의 높은 자리들은(?) ‘무역’이라는 단어를 ‘눈에 보이는 재화’쪽만을 생각하고, 또 그런 위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홍콩이나 싱가폴, 네덜란드...대한민국보다 국가적 자원이 훨씬 부족한 나라들이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국가차원에서 인터넷문화를 무제한 OPEN 시키는 정책을 살펴봐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점이다. 


아래의 4개의 블로그 주소는 2005년 6월부터  Google  Blogger(blogspot)에 내가 만든 웹 사이트들이다.(영문위주)

1. http://mryoum2003.blogspot.com/  -당뇨병, 건강과 질병

2. http://ministeryoum.blogspot.com/  -종교, 신학, 설교, 사회일반

3. http://sangmyoung.blogspot.com/  -문화, 문화의 연속성 

4. http://bodyandnude.blogspot.com/  -인생, 인간, 인간의 본능


이 4곳을  클릭(방문) 해 보면 Google의 Blogger(blogspot)가 어느 정도의 수용성과 상술로 전 세계의 블로그 시장을 점령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이다. Health ,Culture는  내용 량을  어느 정도 올려났지만,  Life 아직 미비하다. Sex는 사진만으로 구성되지만 hot picture나 hard core 는 취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 경우에는 이제 막 시작한 터인지라 구글의 내 블로그 1) 3)번에  홈페이지를 업 시킨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7월 22일 구글의 광고체계까지는 올려 났지만, 세계의 유명 ‘블로그 서치엔진’들에는 아직 등록을 못시켰다.

처음에는 서치엔진 몇 곳에 내 블로그를 실어 났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자기네 베넷광고를 내 블로그에 올리는 기술이 없어서 그들의  베넷광고를 실지 못했다. 그들이 내 블로그 주소를 자기네의 서치엔진에 올려났는데도 내 쪽에서 며칠 뒤까지도 자기네  베넷광고를 내 블로그에 실어놓지 않으면 내 블로그 주소를 철수시킨다. 이것이 그쪽의 생리라는 것을 몇 번 경험하고야 알았다.

아마 1-2달 뒤에는 내 블로그 2곳의 내용을 좀더 보충하고 홈페이지와 구글의 블로그 4곳 전부에 구글의 광고체계와 세계의 유명 블로그 검색엔진들의 베넷광고들도 올려 놀 생각이다.






6. 포스트마다 다소 선정적인 사진을 서두에 올려놓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모 사이트의 짤방 (짤림방지)습관인가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어이없는 질문’이라고  무시하려다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는 생각아래서 자세하게 답변하겠음.


1) 포스트마다 다소 선정적인 사진을 서두에 올려놓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1) 5.의 질문에  ‘시각적이면서  감각적인’ 것이 ‘인터넷의 특징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적었다.  Google  Blogger에 이미 실려 있는 글과(번역된 문장) 사진, 그리고 앞으로 1-2년 동안 실릴 글과 사진을 생각한다면, 미디어 몹에 1달 정도(7월 14일부터 시작했음) 실린 글과 사진을 가지고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이.... 


(2) ‘시각적이면서  감각적인’ 인터넷의 특징은 미디어 몹에서도 예외가 없다.

8월 15일 광복절 날 올린 포스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미디어 몹과 미디어 정글 2군데를 합쳐도 클릭수가 100번이 안된다. 하지만 이미지 블로그에 실린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실린 사진에는 클릭수가 그 10배인  1000번이 넘는다.


내가 사진을 올릴 때는 블로그에 올리는 글의 성격이나 내용에 따라서 사진을 실으려고 노력한다. 글 읽기가 싫으면 사진만으로 대충 감(feeling)이라도 잡으라고....

또 이미지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에도 블로그에 올리는 글 내용의  전부, 반 정도 , 1/3 정도와 함께 올리는 것도 인터넷의 특징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사진을  클릭하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연설문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과 함께 실어 논 킹목사의 연설문 전문을 다 읽어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클릭하면 어쩔 수 없이(?) 제목이나 아니면 본문 중에서 몇 줄 정도는 읽어 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진의 역할은 충분히 해 낸 것이다.


(3)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사실은 ‘검색사이트에서 자신의 글이 살아남으려면  글을 올릴 때 사진과 함께 올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6)번 질문을 읽어 보고는 모든 질문을 무시하려다가 6)번에 대한 나의 답변이 세계의 웹 문서 시장을 한번이라도 넘본 네티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미디어 몹에서 요구하는 10개의 질문에 분량이상의 답변을 해 주기로 생각을 고쳤다.  


웹 시장에서의 사진, 이미지를 함께 실어야 하는 이유는, 가령 전 세계의 웹 문서 시장에서  Diabetes(당뇨병)를 예로 든다면 (문서 / 이미지)

* Diabetes(당뇨병) - 31,500,000개 / 323,000

* Life of Diabetes(당뇨병인생) - 13,300,000 / 7,490

* Life of Diabetes -diabetic patients diet life - 987,000  / 9

  (당뇨병인생 - 당뇨병환자의 식생활)

* diabetic patients diet life(당뇨병환자의 식생활) - 596,000/ 6

* diabetic patients eye care. (당뇨병환자의 눈 관리) - 526,000 / 27

이런 숫자가 나온다.


6월 중순에 에  ‘야후코리아의 블로그’를 이용해서 내 홈페이지의 당뇨이야기(영문)를 10개로 나누어서 시험적으로 세계 웹 문서시장에 내 보낸 적이 있었다. 위에서 보듯이  제목을 Diabetes(당뇨병) 올리면 너무 광범위 해져서 웹 문서가  3천만 개가 넘는다. 그 당시 제목을 “diabetic patients lifestyle - diabetic patients eye care.”식으로 세분화 시켜서  올렸더니   이와 비슷한 웹 문서들이 110,000  정도였다.


내 글 중에  당뇨병이나 신학에 대한 글은 국내의 블로그나 세계의 웹 문서시장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글에 속한다. 당뇨병에 관한 카테고리를 세분화 시켜 ‘야후 코리아  블로그’를 통해 내 보낸 당뇨병에 관한 글 10개가 1-2주 뒤에는 몇 만 건이나 10만 건 정도의 웹 문서  시장에서는 5일 정도는 맨 앞면에 뜰 정도이다. 하지만 10만 건 정도의 세분화된 범주의 웹 문서에서도 글만 가지고는 맨 앞면에(10-15위 안) 오래있지를 못한다.


앞에서 예로 든 숫자에서 보듯이 글(문서)과 사진(이미지)의 비율이 너무 심하게  큰 차이가 난다. 문서만으로는 몇 만 건이나 10만 건 정도만 되어도 문서 검색 카테고리의 맨 앞에(적어도 20-30위 안에) 드는 것은 너무 어렵고, 또 올려져 있는 글조차도 그 자리에서  빨리 밀려난다.

하지만 사진(이미지)은 워낙 그 숫자가 미약해서 웹 문서 시장에 올려만  놓는다면  검색시장에서 무조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가 있다.


지난 6월 중순에 ‘야후 코리나 블로그’에 영문으로 된 당뇨병에 관한 글을 올릴 때도 세계의 검색시장의 특성을 고려해서 글과 함께 사진들도 올렸지만 글만 웹 시장에 등록 된 것 같다.

6월에 야후 블로그에만 영문으로 된 글과 사진을 올린 게 아니었다.

시험적으로 다른 곳의 블로그에도 몇 개씩은 올렸었는데, 내 글이 ‘야후 코리아 블로그’를 통해서만 세계 웹 문서 시장에서 잠깐이나마 유리한 자리를 차지 할 수가 있었다. 야후블로그의 웹문서 담당자가 그 때 사진까지 세계 웹 문서 시장에 올려 주는 안목을 가져야 하는데...


‘야후 코리아 블로그’ 뿐만이 아니고 대한민국 안에서는 유명세가 붙은 포탈 사이트의 대표자들이나 웹 문서 담당자들, 나에게 이 정도의 질문이나 하는 미디어 몹이나,...내가 올린 사진까지 웹 문서 시장에  올리는데 드는 비용을 나는 모른다(글조차도 올려주는지 안 올려주는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내가 글과(특히 영문인 경우에는) 함께 올린 사진이 대한민국이 아니고 세계의 다른 곳에서  클릭 되는 순간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사이트는 내 홈페이지가 아니고 자기네 사업체라는 것까지도 사업구상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이쪽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컴퓨터나 인터넷을 10년, 아니면 그 이상으로 사용해 온 사람들로 알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도무지...


- “사진(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해야만 전 세계의 검색시장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다.” - 1년 동안 외국의 사이트를 서핑 한 덕분에 2-3달에 한번씩 컴퓨터를 망가트려가면서 배운 인터넷의 또 다른 특징이다.


2)모 사이트의 짤방 (짤림방지)습관인가요?


다른 사이트에서는 잘린 적이 없음. 외국의 사이트에서 사진을 담아오기 시작한 것이 11월초였기에  작년 5월-7월까지 3달 동안에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는 사진들이 없었음.
내 블로그에  게시한 사진이 ‘선정성’이유로 처음으로 잘린 곳은 올해 7월 미디어 몹임.

미디어 몹에 ‘병과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글과 고통에 뒤틀리는 남성 조각의 정면사진을 실었는데, 이 조각사진이 잘렸음. 지금 미디어 몹에 실린 사진은 조각의 정면사진이 아니고 옆면사진임.

‘네이버’와 ‘야후’에서는 올해 6월에 잘리기는 잘렸어도 블로그에 게재된 사진이 잘린 게 아니고 ‘네이버’에서는 ‘네이버 포토- 다큐멘터리’에 올린 ‘전쟁에 대한 사진들’이 너무 자극적(?)이라 잘렸고, ‘야후’에서는 ‘재미 존 - 외국스타’ 에서지만, 이곳은 자극성이나 선정성이 아니고 내 홈페이지의 URL이 게재되었기에 잘린 것임.


야후의 블로그에서 7월에 <위반 사항 : 음란/음란 URL전송 ,위반 게시물 : 섹스(1) - 허리 부근을 수 없이 주물러라.> 메일을 받고 열이 받쳐서 블로그 담당자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더니, 음란물이 아니고 내 홈페이지 URL 게재한 것에 대한 신고가 들어와서,....라는 희한한 변명으로 된 정식 사과편지를  받은 적이 있음.

번역된 내 글들을  웹 시장에 내 보내기 위해서는 다른 곳의 블로그보다는 ‘야후코리아의 블로그’가 필요한데도 야후블로그 정책의 폐쇄성 덕분에 당분간 활동을 중지하고 있는 중이다.







7. '깡통인생, 깡통목사, 깡통문화, 그리고 섹스'라는 블로그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깡통을 돌림자로 쓴 까닭은 무엇일까요?


‘깡통’이라는 단어가 느낌이 정형화 되고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기존의 질서에서 이탈한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해서 인생, 목사, 문화, 앞에 서식어로 사용했다. 3번을 쓴 것은 강조되는 효과를 높이려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가 아니고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의 용법이나 “내가 친구가 되어 줄께....” 아니고 “내가 내가 내가 친구가 되어 줄께....”라는 노랫말도 이와 비슷한 효과라고 생각한다. 


또 지금의 내 삶이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척도(?)를 기준으로 볼 때는 40대 중반의 한국인 / 남자 / 목사.... 모든 면에서 이탈된 상태이기도 하다.

다른 블로거들도 자신의 ‘아이디’나 ‘블로그명’을 지을 때 자신의 생각이나 생활을 가미하거나 숨기는 쪽으로 이름 짓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내 경우에는 ‘블로그명’이나 ‘아이디’에 자신의 삶을 드러낸 쪽이다.



8. 홈페이지가 아주 동적이면서 화려한 플래시로 시작화면이 장식되어 있는데 직접 제작한 것인가요? 울부짖는 자유인님의 컴퓨터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1)홈페이지가 아주 동적이면서 화려한 플래시로 시작화면이 장식되어 있는데 직접 제작한 것인가요?


내 홈페이지 www.mryoum.com  을 처음 개설하던 2002년에 5월까지는 컴퓨터는 켜고 끌줄도 몰랐고, 남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본적도 없었다.

2)번 ‘아이디’에 대한 질문에서 언급했듯이 ‘죽-기-전-에 내 삶을 토해내는 방법’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기로 작정하고, 2002년 봄에 홈페이지를 만드는 사람에게 내 의도와 내 요구를 전달해서 만든 플래시이다.

지금의 홈페이지는 2004년 3월과 2005년 5월, 2번에 걸쳐서 업ㅡ시키는 작업을 한 홈페이지만, ‘플래시’ 만큼을 2002년 봄에 만든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울부짖는 자유인’의 이미지와 대충은 맞는 듯해서...)


2) 울부짖는 자유인님의 컴퓨터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난 컴퓨터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기술이나 상식조차도 없는 사람이다.

인슐린주사를 28년 동안 맞고 살아 온 중증의 당뇨병환자의 눈이라 컴퓨터 작업을 20-30분만해도 눈이 붉게 부어 올 정도로 눈 사정이 극도로 나쁘다.

이런 눈 사정으로 인해서 컴퓨터를 안 하면서 버텨왔었다. 하지만 내 사정이 컴퓨터작업을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 되서 뒤늦게 배운 사람이다.


E-mail 보내는 것도 2004년 5월에야 배웠고, E-mail과 함께 첨부파일 보내는 것을 확실하게 배운 것도 올해 4월중에야 배웠다.

‘새 폴더’ 만드는 것도 올해 4월에 홈페이지를 업-시킨 사람에게 배웠다. ‘내 눈 사정’으로 인해서 컴퓨터화면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컴퓨터에 대해서는 ‘폴더 만들기’ 정도의 기본적인 기술에 대해서조차도 힘들어 할 때가 많다.

인터넷이나 블로그는 ‘...알면서 뛰어 든 세계가 아니고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하고 있는 인터넷작업과  블러그 활동’ 이라 실수의 연발이다.


다만 인터넷이 세계적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공통된 분모 역할을 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을 바에야, 컴퓨터에 대한 기초적인 기술획득보다는 인터넷이나  정보세계의 특성, 문화의 흐름....따위를 빨리 파악해서 내 실생활에 응용하고 있는 중이다.








9. 궁극적으로 블로그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이름값(?), 다른 말로 하면 ‘명예’를 얻어 보려고....

만약 질문자가 ‘블로그’를 지칭할 때  ‘미디어 몹’이나 ‘미디어 정글’ 만을 염두에 두고 이 질문을 했다면, 개인적으로 질문자에게 ‘우물 안의 개구리가 세상을 보는 눈’ 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리고 6)의 질문과 그에 대한 내 답변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음.


28년을 인슐린 주사로 맞고 있는 중증의 당뇨병 환자로서 / 중증의 장애인으로서(?) / 목사로서 / 한국인으로서 우아한척하면서도  온갖 오만과 시건방 떨면서 비백인계에게는 끝없이 도도한 서구인들이나, 같은 아시아권에서조차도 남의 나라들을  깡그리 무시하기로 유명한 일본, 중국...

이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에도 이런 목사가 살고 있다,”는 똥고집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당뇨병 (I형, 인슐린 의존형) / 신장 / 관절 / 장애우 / 다이어트 / 신학 / 설교.....나만이 가지고  있는 나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이나 지혜나 지식을 가지고 CNN, BBC, NHK, CN... 방송국에서 그들보다도 더 잘난 척하며 시건방 떠는 내 얼굴을 클로즈 업 시키는 게 내 남은 인생의 목표이며 꿈이기도 하다.


밑의 글은 내 홈페이지의 ‘자화상’에 실린 글 중에서 9)질문과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아서 ‘자화상’의 일부를 인용해서 다시 만든 글임.


** 중증의 당뇨병 환자나, 진행성 만성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 중증의 장애우,... 우리사회에서 아웃사이드로 살고 있거나, 살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내 몸 조건을 통해서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말은 햇볕이나 각종 빛들, 더위, 각종 열기구에 의한 난방, 빛, 습도,... 인슐린 주사 28년의 경력,...이런 악조건 위에다 인슐린 주사를 28년 동안 맞으면서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합병증들까지,...이와 같이 황당한 조건에서도 28년을 견뎌왔고, 앞으로도 5-10년을 더 견딜 수만 있다면, 황당하고도 희한한 이런 나의 삶이 다른 환자들에게는 분명히 ‘희망’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내 홈페이지 www.mryoum.com  에 실은 글과 춤. 사진 .설교, 신학 사상-지난 28년 동안  몸으로 부딪치며 쌓아 온 경험이나 상처뿐만이 아니고, 머릿속의 고이고이 쌓아만 두었던 지식이나, 아직은 보여 줄만한(?)(!) 내 몸을 가지고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나의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는 희망’을 눈으로 확인 시켜 주기 위한 작업이다.


  당뇨병 환자로서, 중증의 장애인으로서(?), 목사로서,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난 지금 내 삶을 남들에게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 보여주려고 한다.

여기서 남들이란 대한민국만이 아니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려는 천재적인, 그리고 천부적인 몽상가의  과대망상(?)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컴퓨터는 완전 컴맹을  겨우 벗어난 주제인데도 ‘지구촌 시대’, ‘글로벌 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정보화된 세계와 인터넷 바다 위를 마음껏 날아보려고 발버둥치는 놈이 바로 ‘울부짖는 자유인’ Mr. 염의 2005년의 자화상이다.







10. 마지막으로 미디어 몹을 찾는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 말씀은? 관심이 가는 미디어 몹 블로거가 있다면?


1)마지막으로 미디어 몹을 찾는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 말씀은?


(1) 이 기회에 좋은 소리 한 가지를 더 하자면 지금도 몸 조건은 남들보다 뒤떨어지지만, 머릿속만큼은 꽉 차있는 또 다른 ‘울부짖는 자유인’들에게도 나의 황당,  멍텅,  대담무쌍,  천방지축....비현실적이고도 몽상가적인 돈키호테 같은 기질 덕분에 도서 출판 ‘울부짖는 자유인’의 탄생과 죽-지-않-고-살-아-서 시리즈도 출판할 수 있었고, 더 큰 세계를 맛보고 싶은 욕망으로 인터넷 속을 헤집고 다니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삶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 아직은 빠르지만 10대들에게 해 주는 말이다.(몹에도 10대 고객들이?...)

9)번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도 좋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목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허황된 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있어야만 그 꿈이 이루어 질 가능성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지, 꿈조차도 꾸지 않는 자에게는 ‘그 눈곱만큼의 가능성조차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미 20대만 해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한국인특유의 고정관념이나 편견들’을  뛰어 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내가 바라보는 한국사회이다. 아직은 ‘천방지축의 10대 철부지’ 일수록 인터넷의 특징을 빨리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쓰는 글이다.


*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 ‘야망자체’보다는 ‘야망의 범위’와 그 ‘야망을 써 먹을 대상’을 제대로 선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세상은 좁고 할일은 많다(!)를 한 번 더 써 먹어라.

* 각 나라마다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자유와 평등’을 내세우며 누구에게나  open 된 사회를 주장하고 있지만, 평범한 국민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조금 열려있는 곳이 인터넷속이다.

인터넷 속에서는 - 내 보내고(팔고), 들여오고(사고) - 단 2가지 부류만이 존재한다. 이왕에 인터넷을 가지고 놀려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기를 내 놓는(파는) 쪽으로 노는 것을 배우도록 하라.



                                             ....울부짖는자유인 염상명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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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너무 뒤늦은 시간이지만....이제야....

인생1./ Naked Life1. 2006/09/21 10:08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28....Now speaks....


느낌이 있는 삶28. - 이제야....Crying Freeman's Life....



28


대한민국의 7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말까지의 사회 전반이 지금과는 너무 달랐다.

주거문제 한 가지만해도, 지금은 흔한 오피스텔이나 원룸 형 주택도 훨씬 후에 등장한 주거문화이다. 

70년대 후반이라야 불과 25~30년 전인데도 70년대 후반은 환자 혼자 살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었던 시기였다. 또 가족들의 도움으로 부엌 딸린 자취방을 구했더라도 그때는 연탄아궁이에 의존하거나 석유곤로에 의존해서 물을 데워 쓸 때이다.


지금은 가정 난방의 대부분을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에 의존하고 있지만 70년대 중반이나 후반까지는 주로 연탄에 의존했었다.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에서는 짧은 시간 동안에 더운 물을 쉽게 구 할 수가 있어서 심장을 빠른 시간 안에 안정시킬 수가 있지만, 연탄아궁이에서는 물을 데우는 위해서는 몇 십 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또 이런 생활조건을 넘어서, 아니면 부모 앞에서 죽겠다고 음독이나 한 자식에 대한 애증어린 감정을 뒤로하고서라도 몸이 아파서 살아가는 것이 위태로워 보이는 자식이 집을 나가겠다는 의견에 선뜻 동조하고 월세방이나 전세 집을 구해줄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됐는지....

이게 RH-787 음독 자들이 부딪친 현실이었을 것이다.








뒤에도 나오지만 79년 8월 이후에는 그 지겨운 여름을  82.83년에는 성균관대 율전 캠퍼스내의 가장 시원한 곳에서, 84.85년에는  강원도 태백의 절에서, 86년은 교회에서, 87년은 당구장에서, 88.89년은 다시 강원도 태백의 절에서, 90년은 다시 교회에서, 그리고 91년 봄부터 혼자 살아오면서 매년마다 힘들게 여름을 견뎌냈다. 


나의 이런 삶의 행적들은 RH-787 음독 자 모두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 ‘특권’이 아님을 안다. RH-787 음독으로 심장까지 망가질 만큼 망가진 음독 자들에게는 나와 같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주거 조건을 갖추고 사는 것만도 철저한 ‘특권’에 속한다.


이런 생활 조건들이 안 되면 - RH-787 음독 자들이 나와 같은 증상들로 고생했다고 가정한다면, - 그야말로 기막힌 몸 때문에 “...죽어가면서 까지도 온전하게 죽어 가지를 못하고, 미쳐야만 자신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벗어 날 수 있었음...” 을 너무 뒤늦은 시간이지만 이 기회에 RH-787 음독 자들의 피붙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증세들 덕분에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가슴에까지도 못을 박고 죽어가야만 했던, RH 787 음독 이후에 그 후유증으로 너무 처절하게, 그리고 비참하게 고생고생하며 죽어가던 이들을 대신해서 “RH-787 음독 자들의 처절할 수밖에 없었던 인생살이”를 나란 놈이- ‘울부짖는 자유인’을 자처하는 염상명 목사- ‘죽?지?않?고?살?아?서’ 이제야 말해주고 있는 꼴이다.


본문 p.60-62     







*** The over-all society between mid 70ies and late 70ies in Korea was too different from nowadays.

Take a residential matter for one example, studio-type apartments (called officetel or one room in Korean) that we now often see is but a residential culture that appeared much later.


The late 70ies is no earlier than 25~30 years ago. But the late 70ies was the times when there were few spaces where one could live alone. Even if you might have gotten a self-boarding room with a kitchen with the help of your family, it was the times in which you must have had to boil water depending on a briquette fire pot or an oil stove.


Until mid-or-late 70ies, they mostly depended on Yeontan, or coal briquette, while nowadays most houses’ heating depends on oil or gas boiler. I am able to stabilize my heart within faster time because I could get warm water easily in the oil or gas boiler, while it took tens of minutes to get water heated on a briquette fire pot.


Beyond this living condition, or apart from parents’ mixed feelings of love and hatred towards their child who attempted killing oneself with poison in front of parents, yet how many parents would there have been who would be ready to comply with going-away-from-home opinion of their child whose living looked perilous due to the ill body, and who would have bought a monthly payment room or deposit-money-based house for that son...?


This would have been the reality that RH-787 poison eaters were faced with.








Though to be mentioned later, I have endured each tiring summer painfully every year since August 1979 in the following places, that is, in the coolest area within the Seonggyungwan University Suwon Yuljeon campus March ’82.’83, in a temple at Taebaek of Gangwon Province May ’84.’85, in a church ’86, in a billiards ’87, again in a temple at Taebaek of Gangwon Province ’88.’89, in a church ’90, and alone since spring ’91.

I know this history of my life is not the ‘privilege’ applicable to every RH-787 poison eater.


For the poison eaters who have as far as their hearts ruined by taking RH-787, it itself is a great ‘privilege’ that one can live at least in such living condition as mine where hot temperature can be avoided.


If they had fallen short of this living condition, or if RH-787 eaters are supposed to have suffered due to such symptoms as mine, they could have gotten away from themselves and from their own neighbors only by being crazy without being able to be dying reasonably ‘even in dying process’ because they have such horrible bodies. At this opportunity, though it might be too late, I would like to tell that fact to the flesh and blood of RH-787 poison eaters.


By virtue of the odd symptoms that were not understandable to others, this minister Youm Sangmyoung - who calls himself ‘Wailing Freeman’ - as late as now speaks ‘how serious the life of RH-787 eaters has been’ in ‘living without perishing’ in place of the suffers who had to die in traumatizing not only themselves but also their family members, and in place of those who had earlier died in painful suffering desperately and miserably, because they had the aftereffect of RH-787 poison.


Text P.60-62  ‘Life with Fe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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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소태 같이 쓰디 쓴 책

인생1./ Naked Life1. 2006/09/2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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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삶.27-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27.


남들은 ‘화창하다’고 표현하는 4월 달에도 조금만 햇볕을 쬐거나 평상시 보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몸에 열이 오르고, 피가 뜨거워져서 심장에 무리가 와서 심한 압박을 느낄 때는 다른 사람들의 선한 친절도, 좋은 집도, 자상한 부모·형제,...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다 필요가 없다.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은 심장이 안정을 얻을 때까지 몸을 담고 있는 ‘미지근한 물’ 뿐이다. 하지만 이러기 위해서는 욕실과 욕조, 아니면 부엌에서라도 마음대로 옷을 벗고, 몸을 담구고 있어야 한다.

RH-787 음독 자들 중 음독 당시에 죽지 않고 몸에 나와 비슷한 증상을 지닌 사람들이 살았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의 힘든 인생살이를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삶의 조건들이 필요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RH-787 음독 자들이 살기 위해서 발악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던 이런 행동조차도 이 조건에 안 맞는 환경 속에서는 ‘미친놈의 미친 짓거리’ 로만 보였을 것이다. 


RH-787 음독 자들이나, 또는 I형 당뇨병과 그로 인하여 생긴 온갖 합병증들로 인해서 인생 말년을 생으로 고생 고생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에게는 나와 같이 희한하고, 괴상한 목사 놈이 쓴 이런 ‘소태 같이 쓰디 쓴 책’이 10년 전이나 20년 전에 발간되어서 그 내용이 빛을 보아야만 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 In April that others express as ‘mild’weather, whenever I feel deeper oppression because I have my body fevered and my blood heated and my heart shocked if my body gets exposed to just a little more sunlight and if my body moves just a little farther than usual, in that case even if there may be any kindness from others, any good house, any attentiveness from parents and siblings.., I don’t need as any other such as such at that moment.


Rather, all you need at the moment is only ‘mildly-cool water’ in which you can keep your body until your heart becomes secure. But in order to do this, you have to continue to dip your body in the bathtub in the bathroom or even in the kitchen in such unclothedness as you please.


If there is any who has lived without perishing in those days out of all RH-787 poison eaters and who has lived in the similar body condition to mine, they might naturally have needed these conditions of life in order to prolong their hard lives any longer. Yet even this desperate act that RH-787 eaters chose to do for survival might have been looked upon as an ‘act of a crazy nut’ if their circumstances fell short of this condition.


For RH-787 poison eaters or the souls who died in long unreasonably painful suffering of their later lives due to type 1 diabetes and any kind of complications, this kind of book, a ‘book as bitter as gall’ written by somebody like this uncommon and queer minister guy should have been published 10 or 20 years ago and its con At least,


....that’s what I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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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RH-787 음독 자들의 필수적인 삶의 조건....!

인생1./ Naked Life1. 2006/09/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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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삶26. - 자유롭게 옷을 벗을 공간(?)은 필수적인 삶의 조건....!



26


몸에 열이 오르면 장소나 시간에 관계없이 옷을 벗어서 몸에 오른 열을 식혀야 하고, 옷을 벗고 있는 것만으로는 몸의 열이 내려가지 않으면 찬 바닥에 뒹굴어서라도 빠른 시간 내에 몸의 열을  내려야하고, 뒹구르는 것만으로도 부족할 때는 욕조에서, 욕조가 없을 때는 빨래할 때 쓰는 커다란 고무 다라에 미지근한 물 받아 놓고서 그 안에서라도 몸을 식혀서 심장을 안정 시켜야만 몸을 지탱할 수가 있다.


또 시간이 갈수록 자극에 민감해지고, 약해지는 시력을 관리하기 위해서 시간의 구애 없이 불을 끌 수 있어야 하고, 몸의 컨디션을 위해서는 아무 때나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춰서라도 몸 상태를 조절해야 하고, 간혹은 풀어 낼 수 없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편으로 우울한 음악에 빠져들어서라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하고,...



일상적으로 되풀이 되는 나의 이런 행동들은 미친놈의 “미친 짓거리가” 아니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고 필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필수적인 몸부림’임을 알리고 싶다.


RH-787 음독 자들 중,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병리 현상으로 고생 했더라면 그들에게는 이런 삶의 방식이 필요했었고, 이런 삶의 방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 확보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갖추고 산 RH-787 음독 자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


본인의 무지 때문에 이런 삶의 방식들을 시도도 못 해보고 죽어 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또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찾았더라도 주위사람들, 특히 가족들이 그 생각을 인정하고 돈으로 뒷받침 해주기 전에는 살아남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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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환자의 자존심을 키워주라!

인생1./ Naked Life1. 2006/09/2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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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삶25. -환자의 가족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말! 말! 말!...가장 큰 스트레스는 자학감이나 굴욕감이다.


25

91년 봄에 나만의 특수상황, 특히 열, 온도, 빛, 햇빛, 습도,... 따위에 적용하지 못한 체 남들과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불가능해서 부모형제에게 억지로 떼를 쓰다시피 해서 전세방을 얻은 뒤에 부모형제의 품을 떠나서 나 혼자서 살아오고 있다.


여기서 “남들이란?” 내 부모·내 형제들도 속한다.

대 수술을 받고도 1·2년 만에 회복된 환자들은 나의 이런 살벌한 말들이 별로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진행성 만성 질환들이나 현대의학으로 고치지 못하는 희한한 병으로 10년, 20년, 30년.... 고생 하다 보면 환자 본인이 아닌 사람들 모두가 남이 된다.


부부사이에도, 부모 자식사이에서도 상대방의 아픔과 괴로움이나 외로움을 어느 정도는 알아준다고 하더라도,  내 아픔이 10이라고 할 때 시간이 흘러갈수록 부모가, 형제가, 부인 혹은 남편이, 자식이 알아주는 것은 5∼6 정도도 안 될 것이다.

그것도 햇수를 거듭할수록 소홀해지고, 무감각해져서, 나중에는 귀찮게 여기고, 피곤하게 생각되어지는 절차를 밝게 된다. 그때부터는 환자는 “.,,자신의 인생이 남들에게 짐이 됐다....”는 자학감이나 자책감으로 어느 정도로 힘들어하는 것을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들은 모른다.


이런 감정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고 장기간 투병생활을 하는 환자들이 가지게 되는 심리상태일 것이다.

단 기간에 회복되는 환자라면 몰라도 장기간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또는 앞으로도 해야만 하는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육체적으로 고통 받아야 하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피붙이나 가까운 주위 사람들에 의해서 “...자존심이 짓밟힐 만큼 짓밟힌 존재로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 이란 자학감이다.


자신의 인생이란 것이 고작 “...자존심이 짓밟힐 만큼 짓밟힌 존재,....짐이 된 존재....” 밖에 안 된다는 굴욕감이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훨씬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 온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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