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투쟁’ 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 삶의 연속

인생1./ Naked Life1. 2006/09/0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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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느낌이 있는 삶 - ‘투쟁’ 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 삶의 연속



3


KBS TV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에 소개 된 사람들 중에서 ‘루게릭 병’ 이나 ‘근이양종’ 환자를 몇 번 보도 해 준 적이 있다.

내 증상이, 정확히 말하자면 죽어가던 내 몸의 외양이 이와 비슷했다.


음독 후 몇 달 뒤부터는 온 몸이 너무 말라서 근육의 형태들이 없어진 대신에 온몸이 절이고, 아파서 자신의 손이 닿는 부분을 몸의 자세를 바꾸어 가며 쉬지 않고 주물러야 했다.

잠 잘 때도 30분∼1시간 정도에 한번씩은 자세를 ‘바꿀 수 있는 만 큼’ 바꾸면서 잠을 자야만 했는데, 이런 흔적들은 28년이 지난 지금도 어느 정도는 남아 있다.

근육이라곤 찾아 볼 수 없게 마른 몸인지라 바닥에 닿는 부분들이 너무 아파서 방바닥에 솜이불을 깔고 그 위에 다시 솜이불을 반으로 접어서 깔고, 밍크 담요를 몸의 굴곡에 맞게끔(마른 몸에 맞게) 여기 저기 뭉텅 거려 대고 누워있어야만 했다.

허리부분에 조금의 압박이라도 모이지 않고 분산되는 자세를 하기위해서 허리 부분이 가장 높고 발과 어깨와 머리가 가장 낮게 해서 2년 동안을 누워만 있어야 했다.


누워만 있는 몸이 저리고, 아파서, 깨어 있는 동안에는 손이 닿는 부위는 쉬지 않고 주무르고, 수 없이 자세를 바꿔준 덕에 다행히도 ‘욕창’은 생기지 않았다.


얇은 베개를 사용해서 머리를 높여서 잠자기 시작한 것은 79년 8월에 ‘율전장로교회’에서 행해졌었던 부흥회에서 ‘종교적 이적을 경험’(?)을 한 이후에도 5년 정도가 지난 뒤에나 가능했다. 

- 이 부분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2006년 현재에도 인간사의 모든 일들을 ‘과학’이라고 일컬어지는 문명의 ‘메카니즘’만으로 판단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반면에, 또 개개인들이 간직하고 있는 모든 ‘종교적 감정’과 ‘종교적 경험’들을 모든 이들에게 객관화 시킬 수만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오늘까지 살아있으면서 이런 글들까지 쓸 수 있는 내 인생배경에는, 79년 8월에 ‘율전장로교회’의 부흥회에서 경험한 종교적 이적(?)을 빼고서는 말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게 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서 정 호 목사님이(당시에는 전도사) 천막교회로 개척하던 ‘율전장로교회’에서 행해졌던 부흥회에 고향친구였던 전학렬의 도움으로 리어카에 실려 가서 79년 8월에 종교적 이적으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 후에도 똥·오줌은 몇 달을 어린이 변기를 이용해서 더 받아내야만 했다.

2년 동안을 죽어 가던 몸에 종교적 이적을 체험했다고 해서 그 다음날부터 재래식 변소에서 똥·오줌을 가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종교적 이적’을 운운하며 남들에게는 이해시킬 수 없는 방법으로 살아났지만은, 77년 11월 6일 새벽의 RH-787 음독이후 지금까지의 내 삶은 ‘고통과 인내’라는 말보다는 ‘투쟁’ 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 삶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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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너머의 끔찍한 시절...의 그 시절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전부(?)

인생1./ Naked Life1. 2006/09/0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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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느낌이 있는 삶 - 끔찍한 시절



2

RH-787 음독 후, 그 부작용은 지독했다.

RH-787 음독 후 처음 며칠동안은 예리한 칼이나 바늘로 쑤셔 놓은 듯한 지독한 신경독 증세가 온 몸의 마디마디 엄습해서 몸의 마디마디가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온 몸의 마디마디를 끔찍할 정도로 쑤셔대는 신경독 증세와 함께 침을 삼키기도 힘들 정도로 편도까지 부어올라서 한 모금의 침도 못 넘긴 체 소의 침과 같이 걸쭉한 침을 입 밖으로 흘려야만 했었다.


그 다음에는 오줌 누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운 증상들이 뒤를 이어서 왔다. 오줌을 누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도 한번에 나오는 양은 고작 50cc-100cc밖에는 눌 수가 없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초기에는 RH-787음독 후에 내 몸에 일어난 병리현상들을 알아보기 위해 소변을 받아야만 했는데, 그 당시 서울우유에서 시판했었던 우유병에(180cc라고 기억된다) 몇 번이나 오줌을 누워야만 고작 작은 우유병 하나가 채워졌다. 


그리고 모든 장기들이 손상을 입은 가운데서도 유독이 췌장이 가장 큰 손상을 받은 탓에 인슐린 주사를 필수적으로 맞아야 하는 I형 당뇨병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RH-787의 독성이 끝난 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처음 1-2달 정도는 그럭저럭 견딜 만 했지만, 그 뒤부터는 얘기가 달라졌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2-3달이 지나면서 몸의 기능들이 거의 쓸 수 없는 상태로 치닫기 시작했다.


11월6일 새벽에 RH-787을 음독한 이후 불과 몇 달 만에 쟁반에 담아 온 밥을 앉지도 못하고 누운 체로 몸을 옆으로 돌린 상태에서 고개만 사용해서 먹게 되었다.

이 정도로 빨리 몸의 기능들이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제일 큰 문제였던 똥·오줌처리는 당시에 갓 돌 지난 조카의 변기를 머리맡에 놓아두고서 해결했었는데, 돌 지날 무렵의 어린애들이 사용하는 작은 변기의 앞·뒤를 바꿔 앉음으로써 가능했다. 변기의 앞·뒤를 바꿔 앉는 자세로-앞뒤 바꾸어서 말을 탄 자세를 연상하면 된다. -변기의 뒷부분 쪽이 내 몸의 앞부분에 오게 한 다음에 빈 분유통을 몸 앞으로 갖다 댐으로써 똥·오줌문제를 한꺼번에 해결 할 수가 있었다.


힘들게 배설한 것을 엎드린 자세에서 팔만 내밀어 사랑채의 방문 바로 밑에 내 놓는 것이, 그 시절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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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느낌이 있는 삶! -1977년 가을,

인생1./ Naked Life1. 2006/09/0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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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느낌이 있는 삶! -1977년 가을,



1

          

1977년 가을,

그때 내 나이 17살(1960년생),

당시 쥐잡기운동의 일원으로 농촌의 각 가정에 나누어주었던 지독하고도 희한한 독성을 간직한 RH-787(쥐약)로 음독자살을 실행한 이후, 2년 동안은 방안에서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한 상태에서 서서히, 그리고 처절하면서도 철저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내가 1977년 11월초에 음독을 하기위해서 선택한 RH- 787은 다른 쥐약과는 남다른 특성을 가진 쥐약이었다.

RH-787의 특이한점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음독 자들의 몸 자체를 서서히, 그리고 철저하게 죽어가게 한다.” 는 RH-787만의 고유한 특성을 지닌 희한한 쥐약 이었다.


다른 농약이나 쥐약들은 음독당시에 죽지 않고 살아나면 나중에 몸이 회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RH-787” 이라는 고유의 상품명이 붙은 쥐약은 다른 쥐약이나 농약들과는 다르게 음독당시에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갈수록 몸의 모든 기능들을 서서히 망가트려서 음독 자들을 처절하면서도 비참하게 죽어가게 한다는 특성을 지닌 희한한 쥐약 이었다.


내 경우에도 RH-787의 특성으로 인해 음독자살 후 처음에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다가 퇴원한 후 2-3달 동안에는- 뒷날에 대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노력만하면 몸이 회복될 줄을 알았다. 또 퇴원 후 1달 정도는 몸의 상황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퇴원한 2-3달 후부터는 밥조차도 누워서 먹어야만 하는 몸으로 변해 갔었다.  


거기에다가 RH-787로 음독 할 때에 ‘꼭 죽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쥐약을 먹은 뒤에라도 살지도 모르고, 죽을지도 모른다.’ 는 막연하면서도 어리광석인 생각과 더불어서 ‘죽더라도 편하게 죽고 싶다’ 기막힌(?)생각으로 진통제 12알과 같이 RH-787을 먹었다.(입원 후에 의사가 남은 약봉지를 가져오게 해서 조사한 결과 RH-787 한 봉의 내용 량은 25g, 그중12g을 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


RH-787의 약 성분으로 몸에 열이 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서 몇 번이나 잠은 깨야 했지만, 진통제 덕분에 음독자살 뒤에 따라오는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은 없었다.

후에 이 부분이 몸을 철저하게 망가지게 한 원인에 한 몫을 거들었을 것이다.


보통 농약이나 쥐약 따위의 독약으로 음독을 했을 경우에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위세척’을 해야 한다. 독극물을 먹은 뒤에 2시간이 지나면 이미 독극물이 몸 안으로 퍼 질만큼 퍼지기 때문에  ‘위세척’을 할 필요도 없어지는데, 내 경우에는 RH-787과 진통제를 함께 음독한 덕분에 10-12시간이 지나서야 가족들이 알게 되었다.

1977년 11월 5일 밤, 정확하게는 6일 새벽 1-2시 사이에 RH-787음독을 하고 잠을 잤었는데, 몸 안에서 진통제성분이 차차 사라지는 아침나절부터 온 몸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점심 무렵이 지날 때쯤에 내 입으로 가족 중의 누군가에게 “나 쥐약 먹었어!” 라는 말을 내뱉었다.

지금의 기억으로는 작은누이, 아니면 어머니한테 한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눈동자까지도 풀린 상태였다.


살던 곳이 시골인지라 택시를 잡기도 힘들었다. 힘들게 택시를 잡아서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병원은 그 당시 수원 종로우체국 옆에 있던 ‘백 내과’였음)이미 위를 세척 할 시간이 경과한 뒤여서 위를 세척 할 필요도 없었다.


그날 1977년 11월 6일 저녁, 병원에서 집에 돌아 온 후부터  RH-787 음독 자들에게 나타났던 끔찍한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RH-787 음독 자들에게 나타났던 증상들’이란 말은 논문을 참고로 한 것임.)





덧붙이는 말 ;

폴더 “46살의 이미지“에는  내 몸, 특히 내 눈 여건상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주어질지 모르는 지금의 상황에서 내 지난 인생편력뿐만이 아니고, 좋아하는 사진 취향까지도 대한민국의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글의 내용과 상관이 있건 없건, 내 취향대로 사진들과 같이 포스팅 하고 있다. 내 블로그에 글과 함께 올리는 사진들은 다른 웹 사이트에서(외국) 주인의 허락 없이 가져 온 사진들이라는 사실까지도 밝히는 바이다.


*** Fall 1977,

My age then 17 (Born at 1960)


For more than 2 years after attempting to kill myself through RH-787(rat poison) of uncommon high toxicity that the authorities concerned gave to each home in the farm villages as a way of Kill-Rats Campaign at the time, I was going more and more to death slowly and miserably and thoroughly in an awkward condition either without living or without dying within the room.


The RH-787 that I chose to kill myself November 1977 had a characteristic far different from any other kinds of rat poison. The peculiarity of RH-787 is that 'it makes the poison-eater’s body itself dying slowly and thoroughly as time goes by.' It was a rare and uncommon rat poison carrying the attribute unique only to RH-787.

If it is any other rat poisons that you might took and survive without dying, then later you have a better chance of your body to be restored. Different from other rat poisons and agricultural chemicals, however, this rat poison labeled RH-787 was a rare rat poison carrying the following attribute that, even if you might had survived at the time of taking poison, it made you die miserably by ruining all the functions of your body step by step as time goes by.


Due to the developed property of RH-787 after attempt to kill myself, I too was treated in the hospital at first. For 2-3 months after being discharged, I thought I'd be restored if only I try - even if I might not worry about the later days. Actually, for about 1 or 2 months, my physical condition was not too bad.


But starting from a few months after leaving hospital, my body turned into the body that had to lie on the bed even when I ate meal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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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살의 이미지- Out of 46-Year-Old Image.

인생1./ Naked Life1. 2006/08/28 08:50





46살의 이미지-‘느낌이 있는 삶’ 중에서

Out of 46-Year-Old Image - ‘Life of Impression’



‘46살의 이미지’  인사말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02년에 작성해 놓았던 ‘죽·지·않·고·살·아·서’의 초고 원고의 맨 앞부분에 자리 잡았던 글들을 대폭적으로 수정과 보충 작업을 통해서 ‘죽지 않고 살아서’시리즈의 세 번째 책으로 내 놓게 된 것이다.

다음의 인사말도  2002년에 만들어 논 인사말을 그대로 실은 것이다.


어떻게 사는 인생인데....


어떻게 견디는 인생인데....!!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세월이 20년이 넘는다.


내 나이 고작 47살에 28년을 온갖 병들과 끔찍이도 싸우면서 살아 왔다. 내 몸에 지니고 있는 황당하고도 기막힌 증상들과 싸우면서 힘겹게 사는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2000년 이후로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한 겨울에도 옷 벗고 뒹굴어야 할 정도의― 화병으로 자릴 잡아서 더 큰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힘들고, 독 오르고, 발악 할 때마다

시편118편17절: 내가·죽·지·않·고·살·아·서·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8절 :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 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을 되 뇌이며 온 몸으로 지랄발광을 떨면서까지 살아왔다.


1년에 몇 번을 울부짖으며 보내면서 살아온 시간들이 벌써 28년째이다.


매년 마다 여름 몇 달은 매일 매일이 아니고, 시간 시간마다 이 땅 위에서 숨쉬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서  헉헉거리고, 몸에 오른 열을 삭이지 못해서 찬 바닥에서 뒹구르다가, 몸이 비틀릴 정도로 힘들어지면 미지근한 물 속에 들어앉아서 심장이 편해 질 때까지 안정을 취해야만 살 수 있는, 무력한 몇 달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기온이 낮아지고, 숨쉬기가 편해지고, 산책하기가 수월해 지는 계절이 다가오면 내 몸의 모든 감각기관들- 혀로 맛보고, 코로 숨쉬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을 동원해서 “살아 있다는 것은 맛보고·숨 쉬고·듣고·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특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산다는 것’자체에 오기가 받혀서 ‘책’ 이라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지만 구성, 문장, 단어 그리고 연결까지도 엉망이다.

아는 후배가 내 글을 보고 “이 정도의 글이라면 내용은 따질 것도 없다. 쓰여 진 글은 문장도 아니고 작문에 불과 할 뿐이다. 책을 만드는 것은 본인들의 자유지만, 이런 종류의 조잡한 글들이 책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런 글들을 가지고 어떻게 다른 사람 가슴에 감동을 줄 수 있느냐” 는 혹평을 했다.


후배의 말에 반박 할 그 무엇도 없다.

나 스스로가 내 글을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내 삶을 가지고, 나 혼자의 힘으로 책을 만들겠다는 계획부터가 ‘문학’이라는 단어하고는 거리가 먼 발상이고, 구성이고, 문장이고, 단어들이다.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조잡한(?) 글이지만 ‘하고 싶은 말들’이 책 아닌 책을 만드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가장 힘들고, 아프고, 괴로워하는 나의 여름 한 가운데서 이 책을 쓸 결심을 했고, 또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 생각하며. ‘어두운 골방에 앉아서 쓰는 슬픈 시’를 더 이상 가슴속에만 간직할 수가 없어서 내가 가진 재주를 총동원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 책을 만들기로 결심한 뒤로 내 글재주의 미진함 때문에 가슴이 헛헛하고, 괜 시리 짜증나는 일들이 많아 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도 모자라 새로운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들어서 시달리고 있는 꼴이다.


70년대 말. 김 만준 이 부른 ‘모모’ 중에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환상 가,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 바늘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노래 말처럼 남들이 나를 미친 소리 하는 미친놈이고, 꿈꾸는 환상 가이고, 철없는 철부지라 해도 좋다. 힘들수록 나만의 환상과 아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부분은 나 혼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이 땅위에서 삶이 힘들어지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종교적 환상이 항상 숭고하다거나, 거룩하다고 할 수는 없다.

때로는 미련해 보이고, 때로는 천방지축, 좌충우돌, 자기모순.... 그렇지만 조그만 파편과도 같은 나만의 환상을 아직도 가슴 한편에 묻어놓고 살기에, ‘세상은 살 맛(?)나는 세상이고, 살아 볼만한 세상’이라는 미래적인 삶을 꿈꾸면서 오늘을 견뎌 내고 있는 중이다.


남들이 말하는 ‘불혹의 나이’도 지났지만 아직도 돈키호테처럼 좌충우돌하면서, 처음 날개 짓을 배우는 어린 새처럼, 나만의 비행을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열심히 날개 짓을 퍼덕이고 있는 중이다.  



덧붙이는 말;

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황당하고도 희한한 인생살이를 밑천으로 ‘죽지 않고 살아서’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문학하고는 거리가 먼(?) 구상과 글재주 덕분에 황당한 글들을 내 보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내용까지 중복되는 조잡함(?)까지를 양해해 주었으면 한다.


내 머릿속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글 솜씨의 한계점도 있고, 처음에 만들어 논 초고원고를 가지고 4권의 책으로 만드는 가운데 덧붙이고, 수정하고, 순서 자체를 바꾸고,...이러다 보니 중복되는 부분들이 많아졌지만, 이 부분들을 삭제할 용기가 없었다.

덕분에 내 글들을 읽어 주는 독자들은 내용들이 중복되는 부분에서는 짜증을 삭히면서 견디어야 하는 인내까지를 시험당하고 있는 셈이다.




                                  

                                                             .....울부짖는 자유인 염상명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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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페니스강화 훈련?...!

건강 / Health 2006/08/27 15:57

쉽게 하는 페니스강화 훈련? - 원두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귀두 단련법...!






- Cogito ergo sum -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강한 남성! - 원두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귀두 단련법’ 내용은 ‘아직도 살고 싶다’ 중  (6.피부 관리) ‘밀가루비누를 사용하여 민감성 피부와 아토피성환자, 그리고 당뇨병환자의 피부를 관리하는 방법의 일원으로 밀가루와 기름과 물 적당량을 로션 정도의 농도로 만들어서 비누 대신으로 사용하는 법의 일부분이다. 


** 밀가루비누를 만드는 방법은

밀가루와 물만 있으면 된다.(피부가 건성인 사람은 오일첨가)

난 커피 향이나 쑥 냄새를 유난히 좋아해서 가끔 커피나 쑥물을 첨가 할 때가 많다


이 반죽 속에 원두커피를 끊여 먹고 남은 찌꺼기를 밀가루를 반죽할 때에 넣고 골고루 섞은 뒤 손으로 몸 전체에 바른 뒤에 가볍게 문지르면 된다.

아니면 (2. 먹을거리)에서 소개한 ‘과일-야채주스’ 적당량을 밀가루 반죽 속에 섞은 뒤에 사용해도 된다. 믹서로 갈아서 만든 과일 주스에는 어느 정도 거친 입자가 남아있게 마련이다. 이 거친 입자가 연약한 민감성피부를 단련시키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이 방법의 보너스효과는 남성인 경우에는 귀두 단련에도 커다란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카드회사에서 보내는 홈 쇼핑책자에 소개되는 “강한 남성을 만드는 제품” 으로 판매하는 - 귀두를 단련하기 위한- 값비싼 로션들도 이 원리를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밀가루 반죽의 미끈거림, 피부에 톨톨 부딪치면서도 까칠 거리는 커피 찌꺼기나 과일입자의 느끼함,... 묘한 기분도 맛보고(?) 좋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굳이 귀두가 단련되는 효과가 아니더라도 위에서 설명한 로션을 목욕할 때마다 페니스에 잔뜩 묻히고 손으로 ‘헛 좃’ 세우는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하다 보면 발기력 자체에도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또 되풀이 되는 훈련에(?) 의해서 발기력만을 향상 시킬 뿐만이 아니고 ‘사정까지도 지연 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건강에 대한 내 이론이고, 내 경험이다.


- Cogito ergo sum -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르네 데카르트


유명한 철학의 명제를 일생생활에 - 그것도 남들은 말조차 꺼내기 힘든 ‘좃 문제’에 - 적용시킨 것도 나만의 생활 방식들이고, 생각이고, 아집이고, 신학이고, 믿음이고, 철학이고,,... 내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들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자신의 삶에 부족한 부분들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수없는 고민과 생각을 해 가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답을 찾아가기 바란다.




***내가 쓴 1권 ‘아직도 살고 싶다’ 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언급되어 있다. 이런 증상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는 환자본인이나 주위에 이런 증상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는 분이라면 내 홈페이지  http://www.mryoum.com/main.html 에 1권,2권,3권의 전 내용을 수록해 놓았으니  읽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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